이천소방서 재난안전과 소방위 박근영 아내 이은희

 
10년 전쯤 저는 소방관이었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딸이 사귄다고 데려온 남자가 소방관이라니’, 평소 차분하셨던 아버지가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을, 생전 처음 보았습니다.

“네가 애를 낳아봐야 힘들 줄 알지. 소방관이 2교대한다는 데, 애를 어떻게 키울거니?” “그때 가서 힘들다 소리 하지 마라” 아직도 아버지의 말이 귀에 쟁쟁 울릴 정도입니다.

소방관과의 결혼은 절대로 안 된다는 부모님의 뜻을 꺾고, 차분하고 성실하며, 고요한 강물 같은 성품을 믿고 결혼할 생각을 굳혔습니다. 결혼식장에서도 철없이 웃으며 결혼한 저는, 대한민국에서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슈퍼맨이라는 것을 그땐 미처 몰랐습니다.

불임이었던 시간을 지나, 2008년 겨울 드디어 첫 딸을 출산하였습니다. 남편은 어렵게 출산한 딸을 처음 만나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했습니다. 참 많은 기다림 끝에 얻은 아이인지라, 남편은 밤잠을 설쳐가면서 딸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았습니다.

병원에서 퇴원 후 집에 온 날, 남편이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고 하였습니다. 수 많은 희생자를 낸 2008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가 난 것입니다. 열흘간 신랑은 집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수술 후 몸이 불편한 상태에서 애를 혼자 돌보며 산후에 우울감까지 겹쳐, 밤마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남편이 집에 못 들어오는 게 슬퍼서가 아니었습니다.

1년 전, 남편의 동료 소방관이 불을 끄다 순직하였기 때문입니다. ‘아, 이런 거구나! 세상에 어떤 직업이 이렇게 목숨을 담보로 일을 해야 하는가’ 그때서야 친정아버지의 뜻이 이해되었습니다.

4분에 한 번씩 울린다는 출동벨, 우리나라는 소방관 1명이 1300명을 담당하며 크고 작은 안전에 관한 사항을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골든타임과, 사람들과의 교통사고 없이 편치 않는 길을 가야하는 사람들, 목숨 걸고 자기일 을 해야 하는 사람들, 대한민국에서 소방관들은 슈퍼맨이었습니다.

슈퍼맨의 부인으로 살면서, 저의 눈이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구조하러 온 소방관에 대한 욕설과 폭행이 허다하고, 사건현장에서의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5년간 41명 자살, 소방관의 40%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도로에 출동하는 소방차만 봐도, 구급차도 이젠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존경받지도 못하는 현실이, 그 중 가장 가슴 아픕니다. “남편 직업이 뭐예요?” 직장 동료들에게 “아~그냥 공무원이예요”하고 얼버무립입니다. 소방관이라고 하면 “어머, 위험하지 않나요?” “그럼, 불 끄러 들어가요?” “애 혼자 키우느라 힘들겠다” 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입니다.

아빠를 쏙 빼닮았다는 일곱 살 아들 녀석을 어느 날, 장난감코너에 데려갔습니다. 원하는 것을 고르라고 했더니 빨간 소방차를 골라옵니다. 순간 “이건 안 돼!”하며 제자리에 도로 가져다놓았습니다. 그림책도 소방차가 있는 페이지는, 아들 못 보게 빨리 넘겨 버립니다. 우리나라에서 소방관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한 달 전 ‘안전 요원 연수’를 받았습니다. 각종 응급처치상황도 재연해보고 심폐소생술도 실습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응급처치 강사분이 “응급상황에 생기면, 무조건 119에 전화하세요” 하며 매번 상황마다 119를 강조하는 겁니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가서 따질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소방관에게 나라의 모든 안전을 책임지게 하고, 소방관들을 위한 소방병원조차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소방관은 슈퍼맨이 아닙니다. 그런 직업 현장이라면 누구도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슈퍼맨의 아내로서 소원이 있다면, 미국 등 선진국처럼 소방관이 자신의 가족들에게까지도 존경받는 직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아빠를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방관 평균수명이 58.8세라고 하는데, 남편이 저보다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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