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만주 독립군 최고지도자, 오석 김혁 장군의 ’넋‘을 기리다’

 북만주 독립군 최고지도자, 만주 무장항쟁을 대표하는 무장항쟁독립운동가 오석 김혁 장군의 84주기 추모제가 지난 23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132)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이었던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 이항증, 북로군정서 총재인 백포 서일 총재 증손 서희우, 신민부 재무과장을 역임한 일강 최석호지사의 아들 최창화씨가 참석하여 추모제 자리를 빛냈다.  
 
 이번 추모제는 총 40여명의 내외 귀빈이 모인 가운데 오석 김혁 장군 선양회(대표 김성태)가 주최하였으며 광복회, 용인국학원, KCJ 국제관계연구소가 후원했다. 

 추모행사는 김영길(KCJ 국제관계연구소) 사무국장 사회로  국민의례, 박인식 박사의 약전봉독, 김인옥 용인국학원장의 기념사, 노용희(KCJ 국제관계연구소) 음악이사의 추모공연, 최은일 작가의 서예퍼포먼스, 헌화 및 분향 순서로 진행되었다.  

 김인옥 원장은 기념사에서 “오직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일생을 바친 오석 김혁 장군의 고귀한 독립 정신을 기억하겠다. 김혁 장군의 유훈인 천광운영(天光雲影), 위국진충
(爲國盡忠)의 뜻을 널리 알려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혁 장군은 용인시 기흥읍 농서리에서 태어나 대한제국 육군 정위로 근무하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군대가 해산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9년 용인에서 3·1운동을 주도하다가 만주로 이동 무장 독립투쟁을 주도했다. 

 1920년 흥업단(興業團) 부단장으로 활동했으며, 대한의용군 부단장으로 활동했다. 1921년에는 대한독립군 군사부장을 역임하고, 1923년 임시정부 국민대표회의에서 국민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북만주지역의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할 수 있는 신민부를 조직하여 중앙집행위원장에 추대되었고, 군사부위원장에 김좌진, 외교부위원장에 조성환 등과 함께 대일항쟁을 위해 진력했다. 

 신민부에서 체계적으로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성동사관학교(城東士官學校)를 설립하자 교장에 김혁, 부교장은 김좌진이 임명되었다. 1926년 고려혁명자후원회를 조직해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번 84주기 추모제를 후원한 KCJ 국제관계연구소 박인식(일본 학술박사) 소장은 김혁장군의 약사보고를 낭독하면서 김혁장군은 업적과 휘하의 부하보다 훈격이 낮게 평가되어 시급히 훈격을 높이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올 3월에 정부가 출범한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에 적극 건의하여 업적에 맞게 훈격을 상향하도록 새로 업적 기록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끝으로 행사를 주관한 오석 김혁장군 선양회 김성태 대표는 “김혁 장군은 북만주 독립군 최고지도자이자, 만주 무장 항쟁의 상징”이라며 “김혁 장군의 넋을 기리고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추모제에 함께 해주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앞으로도 김혁 장군의 고귀한 헌신에 대하여 기억해 주길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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