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전동 일대 옛터 돌아보며 역사문화 일깨워

 
 
창전동은 이천의 심장이다. 조선 효종때 14개면에서 영조때에 이르러 15개면이 되면서 읍내면이 추가되었고 읍내면은 오늘날 대부분이 창전동으로 남아있다.

240여년 전 읍지에 창전동은 창고앞 동네라는 뜻으로 전해진다. 가고리, 관고동 모두 창고를 뜻한말로 이천부는 경상도 충청도의 곡물이 모여드는 요충지며, 창고로 가득한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고장이라 설명하고 있다.

요즈음 역사인식이 점점 퇴색해 가는 가운데 창전동주민자치위와 지역출신 고교교사가 관내 중학생들을 위해 창전동 역사문화알리기에 나섰다.

최의광 선생(용인 초당고교사)은 지난 11일 "2013 청소년지역문화탐방"이란 제목으로 설봉중학교 2년 길민우, 한거창, 박재선, 이완기, 노현우 이상 5명을 초청, 창전동 일대에 소재하다 사라진 옛터를 돌아보며 역사문화를 설명했다.

오전 9시 이천향교를 시작해서 오층석탑(일본강탈), 망현산(신사터), 관아터(구 경찰서), 이수흥 열사동상, 핑구재(이천초 뒤), 행궁터(미도아파트), 이천역(역전빌딩 앞), 억억다리(중앙통)를 탐방했다.

이날 설명의 요지를 보면 이천향교는 "고려말, 현재의 이천중부근 안흥정사를 임시로 쓰고있었으며, 조선 태종2년(1402)에 변인달이 감무로 부임하여 건립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 하며 이천오층석탑은 일제 강점기시절 이마니시의 보고서를 인용, "이천향교 서남쪽 언덕위에 두 개의 마주보고있던 석탑중 하나로 현재 일본 동경에 있는 문제의 석탑(오쿠라 기하치로가 수탈)이라" 고 밝혔다.

 
또한 관아터(이천도호부)는 구 경찰서, '행궁'은 현 미도아파트, 관아와 행궁사이에 '동촌'이, 행궁 북동부에는 '북새말' 이라는 마을이 있었으며 이 지명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화려한 이천의 문화유산들은 1907년 의병운동에 대한 일제의 보복으로 민가 480여채가 불타고 객사, 행궁이 소실되는 "이천충화사건이 발생했다" 고 말하며, 이천시장터(싸전, 우시장, 잡화상) 이수흥 열사동상, 이천역, 중리천의 억억다리를 끝으로 이날 역사탐방을 마감하며, 학생들에게 답사평가와 설문조사, 소감문을 통해 시상이 주어질 것 을 밝혔다.

한편 이날행사는 창전동주민자치위원회에서 학생들의 지역 역사문화 바로 알리기 일환으로 지난 2010년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주민자치위원 4명이 동행했다. 강의를 맡았던 최의광 선생은 이천고 21기출신으로 공주사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수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통해 지난 2012년 문학박사(사학과분야)학위를 수여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를 탐독하며, 특히 지역역사를 세밀히 파고드는 역사학자로서 이천의 역사를 다시 써내려 가고있다. 그는 교사경력 25년을 갖고있다.

                                                         박창혁 기자 o2boss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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